난위 대사의 신은 남악의 신이다. 곧 화신 주융(祝融)이며, 항산의 봉우리가 그 이름을 얻은 바로 그 인물이다. 역대 군주들은 남쪽 봉우리의 신에게 칭호를 거듭 올렸다. 당(618–907년)나라 초에는 사천화왕(司天火王)이 되었고, 개원(開元) 때에는 난위진군(南岳真君)이 되었고, 송(960–1279년)나라에는 사천조성제(司天昭聖帝)가 되었다. 주전(主殿)이 지금도 그 칭호를 쓰고 있다. 이 사당은 황실의 조정과 산의 신자들이 만나는 자리였고, 제국의 남쪽 구역을 맡는 국가 제단이면서 동시에 지방의 제단이었다. 그 신 곁에 이 사당은 항산의 종교적 삶 전체를 품고 있다. 산은 오늘날의 건물이 올라오기 훨씬 전에 도교와 불교 모두에게 성지였고, 산 위에서 가장 이른 도교의 흔적은 동한(後漢) 때로 거슬러 올라가며, 그때 장도령(張道陵)이 이 산을 오르었다고 전한다. 한마디로 이 신은 남쪽의 화신이며, 왕조들이 그에게 쌓은 등급과 칭호가 그를 감싸고 있다. 산 자체는 전설의 제왕 시대로 남쪽 봉우리로 봉해졌고, 그 뒤로 끊임없이 황제의 제물을 받았다.
저널에서
남쪽 신을 모시는 큰 사당
난위 대사는 남중국 최대급의 사당 군집 가운데 하나로, 남악의 신을 위해 지어졌다. 그 신은 화신 주융이며, 도교와 불교의 전각이 긴 축을 따라 늘어 서고, 신참들은 여전히 먼 곳에서도 찾아온다.
같은 도시에서 · 항양 ↗그 신은 누구였는가
사당은 어떻게 짜였는가
이 사당은 릭성문(櫺星門)으로 들어서 구미당(九宮堂)과 정천문(正川門), 황비각(皇碑亭), 집영문(集英門), 어서루(御書樓), 주전(主殿), 침궁(寢宮), 북후문(北後門)을 차례로 지 남북 축 위로 이어져 있다. 동서 양쪽 날개에는 도교 사당 여덟과 불교 승려진 여덟이 놓여 있어, 불교와 도교, 유교 세 교가 하나의 울타리 안을 함께 쓴다. 주전은 베이징 자오성(紫禁城)의 태화전(太和殿)을 본떠 지어졌고, 옛 도심에서 가장 높은 건물이다. 그 앞의 일흔두 개 석주가 항산의 일흔두 봉을 가리키며, 백석으로 조각한 용이 16개 계단 위로 솟아 있다. 황비각 안에는 강희(康熙) 제의 279자 비문이 이 산을 나라의 남쪽 기둥이자 장수의 봉우리라 부르는데, 항산이 장수산(長壽山)이라는 이름을 얻은 근원이 여기다. 전체 사당 부지가 9만 8000평방미터가 넘고, 명(1368–1644년)나라 때 지은 집영문이 사당에서 가장 넓은 곳이며, 입구 위의 구미각(奎星閣)은 한때 공연 무대로도 쓰였다.
사당과 그 찾아오는 사람들
난위 대사의 향은 거무롭게 탄다. 해마다 큰 불교 명절에는 이 사당이 신전(廟會) 자리로 가득 차며, 그 풍습은 당(618–907년)나라 때 시작되어 음력 5월 17일 천부제(天符帝)의 생신일을 중심으로 열리고, 지금은 제사와 잡기, 연극, 서예, 전등이 한데 섞였다. 신참들은 후난과 광둥을 물론 홍콩과 마카오, 동남아시아와 일본에서도 온다. 주전 앞의 두 보물 창고에는 향이 들어간다. 왼쪽은 산 사람들을 위한 것이고 오른쪽은 죽은 사람들을 위한 것이다. 지금 주전에 서 있는 남악의 신상은 문화대혁명 때 원상이 파괴된 뒤 1983년에 만든 복제품이며, 사당은 1980년대 이래 쉬지 않고 복구되고 있다. 이곳은 살아 있는 참례의 자리이면서 세 교의 기념물이면서 축제의 현장이기도 하다. 천 년 넘게 남악이 무슨 뜻이었는지를 가장 충실하게 드러내는 한 폭이다. 승려로 이루어진 자원 소방대도 이제 여러 세기에 걸쳐 전각을 잠식하던 불에 대비해 훈련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