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널에서

대나무로 만든 종이

레양은 제지술의 발명자 채륜의 고향으로, 수백 년 동안 쓸 종이를 만들어 왔다. 그 종이는 지역의 고령토와 모죽에 의지했고, 도시는 지금도 제지의 도시를 자처한다.

같은 도시에서 · 항양 ↗

종이는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레양의 종이는 그 땅이 내어 주는 것에 서 있다. 이 도시는 항양 분지의 남쪽 가장자리에 놓여 있고, 풍부한 고령토(高嶺土)가 좋은 제지 원료를 만들며, 언덕에는 모죽(毛竹)이 자란다. 남쪽의 큰 대나무로, 그리고 향나무와 소나무, 유자나무가 함께 있고 모두 이 현의 산림 산품으로 기록되어 있다. 이 도시가 자처하는 발명은 제지술 그 자체다. 레양은 제지술의 발명으로 알려진 한나라 궁정 관료 채륜(蔡倫)의 고향이며, 이 도시는 뤼수(耒水) 강변의 2천 년 넘게 된 오래된 현급 도시이고, 그 강은 지금도 도시를 가로지른다. 그 시작에서 이 도시는 종이 산업을 쌓아 올렸고 그 산업은 오늘까지 이어진다. 레양은 여전히 제지 생산의 중심지로 묶인다. 결국 그 종이는 지역적인 물건이다. 표면을 바르는 점토, 섬유가 될 대나무, 그리고 식물의 섬유를 처음 종이라는 표면에 얹어 무엇을 쓸 수 있게 만든 그 사람의 이름까지. 현성(縣城)은 여전히 이 지명의 유래가 된 뤼수 강변, 물의 북쪽에 놓여 있다.

그 종이는 무엇을 위해 있었는가

제지술은 중국의 사대발명(四大發明) 가운데 하나다. 글을 쓸 수 있는 값싸고 휴대하기 쉬운 면을 얻어낸 기술이고, 레양이 이 발명에 있다고 말하는 것은 그 역사의 한 자리에 자기 자리를 두겠다는 뜻이다. 이곳이 고향인 채륜은 이 기술의 발명자로 기억되고, 도시는 그 단 하나의 성취 위에 자기 정체성을 세워 제지의 도시를 자처한다. 이 도시가 만든 종이는 쓸 곳을 찾는 오랜 수요에 응답했고, 그 산업은 수백 년 레양의 이름을 붙여 두었기에 이 현급 도시는 여전히 그 기술로 알려져 있다. 원료인 고령토와 대나무는 여전히 지역의 것이고, 제지 생산도 계속된다. 이것은 항양이 화학, 섬유, 가공식품과 함께 내세우는 제조업의 한 부분이다. 짧게 말해 종이의 쓰임은 곧 쓰는 일의 쓰임이고, 레양은 그것을 공급해 살았다. 이 종이의 이름은 시인 두부(杜甫)까지 끌어들였다. 그는 뤼수 강 근처를 여행하던 중 죽었고 처음 거기 묻혔으므로, 이 현은 제지술의 발명자의 기념 공원 옆에 그의 무덤도 함께 두고 있다.

작은 도시에 남은 기술

레양은 제지술의 발명자의 이름을 공공 공간에 남기고 있다. 채륜 기념공원은 한때 무대터였던 자리로, 저녁에는 사람들이 모이는 곳이고, 채륜 대나무바다(竹海)는 대나무 숲 한 덩어리로 발명자의 이름을 도시의 자연 경관으로 끌어들인다. 제지 생산 자체도 여전히 지역 고령토에 의존한 산업으로 이어지고, 도시는 후난 안에서도 그 중심지로 남아 있다. 이 일터 산업을 둘러싼 자리에 채륜의 기억은 돌보기 좋다. 도시는 제지의 도시이자 천 년 된 현이라는 자리를 세우고, 그 사람은 이 도시의 사람으로 받아들인다. 이 도시에서 나온 이름 하나가 바다 건너까지 이어지기도 한다. 소설가 쿠오(匡靈秀)가 자신의 가문이 레양에서 왔다는 것을 밝힌 바 있기 때문이다. 이 기술은 결국 종이 한 장을 만드는 일이 아니라 이름을 지키는 일이다. 작은 후난의 도시가 세상에 처음 종이를 준 그 발명가를 놓지 않고 붙드는 방식이다. 발명가의 이름을 딴 광장은 도시에서 가장 큰 광장 가운데 하나이며, 젊은이는 그곳에서 스케이트를 타고 어른들은 이야기를 나눈다.

계속 탐색하기 · 레양 죽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