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널에서

천룡산 석굴, 서쪽 산에 새긴 것

북위에서 당까지 타이위안 서쪽 산에 판 굴. 두 자료가 세는 수, 조각이 간 곳, 그리고 디지털 복원이 되돌리는 것.

같은 도시에서 · 타이위안 ↗

진사와 같은 곳이 아니다

천룡산은 진사와 별개의 유적이지만 둘은 자주 함께 묶인다. 석굴은 타이위안 서쪽 산 동봉과 서봉의 남향 절벽을 따라 500미터쯤 이어져 있다. 영어 자료는 동산에 여덟 굴, 서산에 열세 굴을 세고, 중국 자료는 모두 25굴로 동봉 열둘, 서봉 열셋을 센다. 두 수가 맞지 않으므로 두 봉우리에 굴이 한 무리씩 있다고 하는 편이 안전하다. 굴은 북위 말과 동위에 시작해 북제와 수를 거쳐 당까지 이어졌고, 대부분의 굴은 당대에 만들어졌다.

조각이 떠난 곳

이곳의 이야기는 유실이다. 1920년대에 조각이 굴에서 나와 해외 수집가에게 팔렸다. 일본 상인 야마나카 사다지로가 굴의 내용을 적어 낸 책이 그 수요를 부추겼고, 지금 해외에서 볼 수 있는 것의 상당수가 그렇게 이 구멍에서 나갔다. 최근의 조사는 반출된 불상과 파편을 240점이 넘게 세며, 그중 적어도 150점이 미국과 일본, 영국, 프랑스, 독일, 스위스의 수십 기관과 개인 소장으로 있다. 굴은 남았지만 빈 껍데기처럼 읽힌다. 옛 모습을 그려 보기 어렵다. 2013년에 시작된 디지털 복원 사업은 그 뒤로 사라진 불상 100여 점의 자료를 모으고 주요 굴 열한 곳을 각기 다른 정도로 되살렸다.

지금 이곳의 모습

아직 볼 수 있는 것은 대부분 윤곽과 양식이다. 남은 당대 조각은 부드러운 조형과 감각적인 옷자락, 중앙아시아 간다라 전통과 연결된 자연스러움으로 알려졌고, 이곳의 당대 작업은 독자적인 지역색을 지닌 천룡산 양식을 이루었다. 영어 자료는 굴 안에 남은 불상 1,500점과 부조 1,144점을 세고, 중국 자료는 500점이 넘는다고 적는다. 두 자료는 세는 방식이 다르다. 8호굴은 개황 4년인 584년이라는 연대를 돌에 새긴 굴이며, 이 무리에서 가장 큰 축에 든다. 석굴은 2001년 국가급으로 지정되었고, 보호 구역은 두 봉우리의 굴과 천룡사, 관련 유적을 아우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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