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널에서

진사, 오래 쌓인 제사의 풍경

진사는 네 부분으로 읽힌다. 정원의 주백, 송대 전각의 43구 채색 인물, 연못 위에 놓인 다리, 그리고 이곳에 이름을 준 샘이다.

같은 도시에서 · 타이위안 ↗

입구의 늙은 나무

진사의 중심축 옆 고전 정원에 늙은 측백나무 한 그루가 서 있다. 줄기는 수직에서 비껴 밖으로 기울었다. 영어 자료는 수령 3,000년, 주대로 적고 중국 자료는 서주에 심었다고 전하며, 난로천과 송대의 채색 시녀와 함께 삼절로 꼽는다. 이 나무는 이곳에서 눈에 보이는 가장 오래된 것이지만, 사당 자체는 어떤 확정된 연대보다 오래되었다. 창건 연도는 밝힐 수 없고, 가장 이른 문헌 언급은 북위 역도원의 《수경주》다. 그 책은 산을 등지고 물가에 선 당숙우의 사당과 물가의 서늘한 전각, 물 위에 걸친 나는 들보를 적는다. 사당과 전각과 다리는 그때 이미 서 있었다.

송대 전각의 채색 시녀들

성모전은 이 건축군에서 가장 알려진 건물로, 송대 1023년에서 1032년 사이에 세워지고 1102년에 다시 지어졌다. 송 황제가 당숙우를 펀동후로 추존한 뒤, 그의 어머니 읍강을 위해 세운 전각이다. 위로 굽은 중첩 처마를 받치는 기둥마다 여덟 마리 나무 용이 감겼고, 용은 하나씩 따로 새겨 기둥에 붙였다. 안에는 흙으로 빚은 조각 43구가 있다. 목감실에 앉은 신상과 그 좌우로 선 실물 크기의 여성 시녀 42구다. 43구 가운데 둘은 명대에 더한 것이고 나머지는 북송의 것이다. 시녀들은 저마다 집안에서 쓸 법한 그릇과 대야, 빗자루를 들었고, 전시를 위해 정돈된 것이 아니라 일하던 도중의 모습으로 잡혀 있다.

연못 위에 다리를 놓는 법

성모전 앞에서 축은 네모난 연못을 가로지르고, 그 위의 다리는 십자 모양이다. 연못은 어소, 이 다리는 어소비량으로, 앞의 헌전과 성모전과 함께 삼보를 이룬다. 북위의 문헌에 이미 물 위에 걸친 나는 들보가 나오니 생각은 오래되었다. 지금의 다리는 1955년의 보수로, 그해까지 남아 있던 북송의 중건을 따른 것이다. 여덟 모서리 기둥 34개가 연못에서 솟고, 그 위의 목조 두공이 헌전과 뒤쪽 전각을 잇는 십자형 석조 상판을 받친다. 기둥과 두공은 이전 모습을 지녔고, 난간은 뒤에 송대 건축서를 본떠 만들었다.

물이 나오는 곳

사당은 진수의 머리, 진천이 솟는 현옹산 기슭에 있다. 이름은 물을 따른다. 당숙우의 아들은 이곳의 물줄기 때문에 나라 이름을 당에서 진으로 바꾸었고, 사당은 그 샘 근원에 처음 세워졌다. 삼절의 하나인 난로천은 흐름이 끊기지 않으며 경내 세 샘 가운데 하나다. 성모전 서쪽에는 물의 신 수모를 모신 사당이 있다. 샘 때문에 이 건축군은 전각의 집합이 아니라 하나의 풍경으로 읽힌다. 연못과 샘과 다리가 제사의 한 줄 위에 놓이기 때문이다. 2022년 진원구는 30년 가까이 끊겼던 진사천을 자연 유량으로 되돌리는 사업을 시작했다.

계속 탐색하기 · 진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