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핑야오 성벽 안의 거리들

펀허 가의 성곽 도시 핑야오. 성벽 위에서 지금도 읽히는 구조, 성 안의 국가급 보호 유적 스무 곳, 그리고 성과 바깥 두 사찰을 묶은 1997년 등재.

같은 도시에서 · 진중 ↗

성벽 위에서 읽히는 도시 구조

핑야오는 펀허 동쪽 기슭, 타이위안 분지 남서쪽 가장자리 가까이에 있다. 성곽 도시는 핑야오현 구타오진의 소재지이고 행정은 진중시가 맡는다. 성벽은 명 홍무제 3년인 1370년에 세웠고, 성벽이 감싼 구조는 지금도 성 위에서 읽힌다. 성문은 여섯 개다. 북쪽에 하나, 남쪽에 하나, 동쪽에 둘, 서쪽에 둘이다. 이 배치는 거북을 닮았다 하여 머리와 꼬리와 네 다리를 갖추었다 하고, 그래서 이 도시는 지금까지 거북성이라 불린다. 현은 본래 핑타오라 했는데, 북위 때 관리들이 당시 황제의 이름자를 피하면서 이름이 바뀌었다.

큰길과 골목

가운데에서 시작하자. 명청 시대의 중국 도시는 팔괘의 형식으로 배치되었고 핑야오도 그렇다. 큰길은 곧게 뻗고, 그 길을 받치는 골목은 직각으로 가른다. 그 결과는 걸으면서 익힐 수 있는 바둑판이다. 길 사이에는 17세기에서 19세기 사이에 지은 수천 채의 점포와 집이 남아 있고, 대부분 원래 필지 위에 서 있다. 성 주변의 현에는 등록된 부동문물이 1,075점, 그중 143점이 국가와 성과 시와 현급으로 보호되며, 국가급은 20점이다. 국가급 목록에는 성벽, 진국사, 쌍림사, 시루, 일승창 옛 점포, 은행가 레이루타이의 옛집이 들어 있다.

핑야오가 보존된 방식

이곳의 보존은 최근의 결정이 아니라 습관이다. 15세기부터 조직적인 수리가 여러 차례 있었고, 그 마지막 단계는 1979년에 시작되었다. 관광객을 위해 한 번에 복원한 것이 아니라 여러 세대의 손이 지붕과 벽을 고쳐 온 셈이다. 이 도시는 국가역사문화도시로도 지정되었다. 그리고 1997년, 성곽 도시와 바깥의 진국사와 쌍림사가 함께 세계유산으로 등재되었다. 등재 범위는 옛 도시와 그 바깥의 두 유적이며, 이는 여기서 보호되는 것이 하나의 성벽이 아니라 여러 부분으로 된 경관임을 일깨운다.

지금 성벽 안에 있는 것

금융이 한창이던 시절 이 도시 안에는 스무 곳이 넘는 금융 기관이 있었다. 전국의 절반이 넘는 수였다. 그 점포들은 지금도 옛 거리에 서 있고, 여럿은 독립된 보호 대상이며 두 곳은 시급으로 지정되었다. 그 첫 번째인 일승창은 국가급 목록에 있다. 도시는 그 뒤 비지 않았다. 2020년 인구조사에서 핑야오현의 상주인구는 450,697명이었고, 경제는 관광과 농업이라는 두 가지 평범한 것에 기대고 있다. 성벽 밖에서 이 현을 알린 핑야오 소고기와 퇴광 칠기도 지금 여기서 만든다. 이곳은 보호 건물을 안고 살아가는 도시이지, 비어 있는 무대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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