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잉현의 목탑: 어떻게 아직 서 있는가

랴오 시대 목조 탑을 바깥에서 안으로 읽는다. 팔각 평면, 골조를 잡는 54가지 두공, 1926년의 포격, 그리고 흔히 과장되는 문화재 지위.

같은 도시에서 · 숴저우 ↗

랴오 시대의 목조 탑

먼저 볼 것은 형태다. 지름 30미터의 팔각형, 위로 갈수록 안으로 물러나는 다섯 층, 그리고 전체를 67.31미터까지 끌어올리는 탑찰. 모든 것이 목재다. 탑은 숴저우의 잉현에 있고, 중국에 남은 가장 오래된 목조 탑이다. 연대는 동시대 문서 어디에도 적혀 있지 않다. 통설은 명대 지방지에 기대는데, 지방지는 이 건물을 랴오 청녕 2년인 1056년으로 둔다. 랴오는 진이 북방을 차지하기 전 키탄의 나라였고, 1195년 금대에 수리 기록이 있다. 그러니 방문자가 보는 것은 금대의 손이 들어간 랴오의 골조다.

골조가 짜이는 방식

여기에는 못이 하나도 없다. 목재는 서로 물린 이음과 두공으로 목재에 붙는다. 두공은 각 처마를 벽 밖으로 밀어내는 겹친 팔 모양의 부재로, 탑은 그 가운데 54가지 다른 형식을 쓴다. 랴오 건축에서 기록된 가장 많은 수다. 그 다양성이 곧 어려움이다. 두공마다 골조 안에서 제 위치가 있어, 하나의 세부만 보고 수리를 설계할 수 없다. 밖으로는 다섯 층이고, 안쪽으로는 처음 네 층에 각각 숨은 층이 있어 내부는 모두 아홉 층을 오른다. 전체는 높이 4미터쯤의 돌 기단 위에 선다. 아래에서 보면 두공은 처마마다 짙게 몰린 그림자 띠로 읽힌다.

포격과 수리, 그리고 논쟁

탑은 맞은 적이 있고 그대로 서 있다. 1926년 군벌 전투 중에 200발이 넘는 포탄이 탑의 몸체에 명중했다. 크게 파손되었으나 무너지지는 않았다. 수리는 그보다 오래된 이야기다. 1195년 금대의 공사는 랴오의 건립을 이었다. 더 어려운 것은 현재의 문제다. 54가지 두공이 하나의 골조에 물려 있어 건물을 해체했다 다시 조립할 손쉬운 방법이 없고, 보존 방안은 오랫동안 논의되었으나 합의된 공법이 없다. 그래서 잉현의 목탑은 복원된 기념물이 아니라, 앞날이 아직 정해지지 않은 옛 구조물이다.

문화재 지위를 정확히 말하면

1961년 이 탑은 국무원이 정한 제1진 전국중점문물보호단위 명단에 들었다. 그것이 이 탑이 가진 가장 높은 지위다. 세계유산은 아니다. 잉현은 2009년 등재를 향한 작업을 시작했고 2011년 절차가 공식 출범했으며, 2013년 탑은 펑궈사와 함께 중국의 세계유산 잠정목록에 올랐다. 잠정목록 등재는 의사의 표명이지 등재가 아니며, 이 구분은 여기서 중요하다. 탑은 흔히 등재가 이미 이루어진 것처럼 소개되기 때문이다. 잉현에 서 있는 것은 신청이 진행 중인 제1진 국가급 문화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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