벽은 고성 안 허양 거리에 있고, 명대 왕부의 저택을 마주 보도록 세운 조벽이다. 이런 조벽은 문으로 들어서는 길을 가로질러 서서 거리에서의 시선을 막는다. 1392년에서 1396년 사이 명 태조 주원장의 열셋째 아들 대왕 주계를 위해 세워졌고, 길이 45.5미터, 높이 8미터, 두께 2.02미터이다. 벽의 용은 발톱이 다섯이 아니라 넷이다. 왕부에는 예제가 정한 네 발톱의 용, 곧 이무기를 쓸 수 있었고, 그 차이는 벽면을 따라 세어 볼 수 있다. 부조로 된 용 아홉 마리, 하나같이 발톱이 하나 모자란다.
저널에서
유리 기와로 만든 구룡벽
허양 거리 명대 왕부의 조벽. 부조로 된 네 발톱의 용 아홉, 길이 45.5미터, 1954년에 28미터 옮겨졌고 지금도 같은 종류 가운데 가장 오래되었다.
같은 도시에서 · 다퉁 ↗왜 용의 벽인가
유리 기와는 어떻게 만드는가
벽을 옮긴 방식이 벽을 만든 방식을 알려 준다. 1954년 8월 도시에 길이 필요해 벽을 해체해 원래 선에서 28미터 남쪽에 다시 세웠고, 옛 부재는 옛 순서대로 끼워 넣고 없어진 부분은 회색 벽돌로 채웠다. 그것이 가능한 것은 벽면이 벽돌 몸체에 붙인 별개의 구운 부재로 된 껍질이기 때문이다. 각 부재는 올리기 전에 형태를 갖추고 시유되었다. 납유는 가마에서 기와에 융합되므로, 40미터가 넘는 폭에서 색이 칠한 것처럼 보이지 않고 한 장의 면처럼 읽힌다.
다른 용벽들
다퉁은 스스로를 용벽의 도시라 부르고, 아홉 기가 남아 있다. 이 벽이 가장 유명하며 비교 대상은 대개 베이징이다. 자금성과 베이하이 호수의 구룡벽은 300년 이상 뒤의 것이고, 베이하이의 벽은 이 벽의 절반 크기쯤이다. 그 차이가 보여 주는 것은 서열만이 아니라 취향의 변화다. 1390년대 명대 왕부의 조벽과 후대 조정의 황실 벽이 그렇게 마주 놓인다. 이 벽은 2001년 제5차 전국중점문물보호단위로 지정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