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널에서

징싱관의 냥쯔관

징싱 길이 타이항을 넘는 명대 관문. 1542년의 성과 두 개의 문, 협곡의 샘과 폭포, 그리고 이름 뒤에 있는 공주 이야기.

같은 도시에서 · 양취안 ↗

관문을 지나는 길

관문은 양취안 핑딩현 북동쪽 몐산 기슭, 타이항산을 넘어 산시성과 허베이성을 잇는 주요 길 가운데 하나에 서 있고, 스자좡에서 서쪽으로 55킬로미터다. 옛 이름은 웨이쩌관이고, 오늘 보이는 성은 가정 21년인 1542년에 수비 사령관을 두고 다시 세운 것으로 그 형태를 지닌다. 만리장성의 제9관이라 불리며 내삼관의 남쪽 끝에 있다. 산을 사이에 두고 징싱관과 마주하여 둘이 함께 징싱 길목을 지키는데, 이는 두 성을 잇는 몇 안 되는 길 가운데 하나다. 그 방어는 신커우 전투에서 중요했다.

건조한 지역의 물

타이항의 관문은 대개 마른 돌과 바람의 자리인데 이곳은 다르다. 황허의 지류인 타오허가 관문 아래 골짜기를 감아 흐르고, 성벽 둘레 여러 곳에서 샘이 솟는다. 물이 이 자리를 지킬 수 있게 한 까닭이다. 수비대에 물이 필요하고, 성벽 안에 사는 사람에게도 필요하다. 샘은 하나의 볼거리가 아니라 한 벌이고, 군사의 정체성 옆에 또 하나의 정체성을 이곳에 주었다. 여러 샘이 기록되어 있으며 그중 북서쪽의 것이 가장 널리 알려져 있다.

진 안의 폭포

가장 알려진 샘은 북서쪽의 현천으로, 냥쯔관 폭포, 수렴동 폭포라고도 불리며 물을 관문과 굴에 함께 묶는 이름들이다. 샘이 편의에서 볼거리가 되는 지점이다. 관문 북서쪽에서 물이 바위를 떠나 떨어진다. 냥쯔관 폭포라는 이름은 성벽이 아니라 샘에 붙어 있고, 이는 눈여겨볼 만하다. 방문객이 가지고 가는 이름에 요새가 아니라 물이 들어가기 때문이다. 기록은 샘과 그 두 이름, 북서쪽이라는 위치를 주지만 치수나 계절은 주지 않는다.

공주와 이름

이름은 이야기다. 전설에 따르면 당을 세운 이연의 딸 평양공주가 이끄는 군대가 한때 이곳에 주둔했고, 그 병사들이 아가씨 병사라 불린 데서 관문이 낭자관이라는 이름을 얻었다. 그 전승은 옛 이름 웨이쩌관에 붙어 있고, 아래 문은 당의 평양공주가 군사를 주둔시킨 곳이라 새겨 그 주장을 돌에 담고 있다. 군사의 기록은 따로 있고 더 늦다. 1940년 8월 20일 밤, 백단대전에서 팔로군 주력이 이 관문을 밀고 들어왔다.

계속 탐색하기 · 냥쯔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