징쯔관 북쪽 끝, 거리 이름은 바이링 거리이고 세 성이 동시에 나눠 갖는다. 그 한가운데에 높이 3미터의 삼각 기둥이 서 있다. 1987년, 세 쪽이 함께 돈을 모아 세운 돌로, 안내자는 이것을 ‘세 갈래 불꽃’이라고 부른다. 세 면에는 세 성의 이름이 서로 다른 순서로 새겨지고, 각 면의 가운데에는 그 지역의 이름이 놓인다. 어느 성이 거리의 어느 구간을 가졌는지가 돌 하나에 새겨진 셈이다. 현의 안내는 지리에도 집착한다. 이 기둥은 서쪽으로 섬서의 바이랑진, 남동쪽으로 후베이의 바이랑진, 북동쪽으로 허난의 징쯔관이 놓인 지점을 표시한다. 방문자들은 이 삼각석 위에 올라선다. ‘한 걸음에 세 성’이라는 말이 수사가 아니라 사실이 되는 자리다.
저널에서
한 줄의 거리, 세 개의 성, 그 한가운데의 돌
징쯔관은 뱃길로 선 마을이다. 큰길 한가운데의 경계석은 지금도 방문객이 한 걸음에 세 성이라는 말을 실감하는 곳이다.
같은 도시에서 · 난양시 ↗
세 면의 돌
청대의 거리와 꽃의 문
거리 자체가 이 마을의 으뜸 문화재다. 명·청대 건물이 오 리 이어지고, 2,200채가 넘는 집과 700여 개의 점포가 남아 있다. 배치는 남북으로 곧게 뻗은 구간을 짧은 굽이로 이어 붙인 모양이다. 집들은 실용적인 앞면을 지킨다. 거리 쪽으로는 나무 판문을 달아 낮에는 열고 밤에는 닫으며, 안으로는 두세 개의 작은 마당이 이어진다. 현의 안내는 구조적인 세부 하나를 짚는다. 모든 출입구 옆에 길이 1미터가 넘는 방화벽이 붙어 있고, 뒤쪽이 앞쪽보다 높아 불이 옆집으로 넘어가지 못하게 한다. 주민들은 그 벽에도 그림을 그리고 글을 새겼다. 남쪽 입구에는 1914년에 세운 관문이 있다. 돌을 꽃무늬로 새긴 벽돌을 쌓아 올려, 현지에서는 ‘꽃의 문’이라고 부른다.
배들, 그리고 잔잔한 물을 빌던 사당
이 거리는 강이 있어 존재한다. 안내에 따르면 1772년, 징쯔관의 부두에는 하루 백 척이 넘는 온갖 배가 들어왔고, 돛대가 ‘십 리를 끊기지 않고’ 늘어섰으며, 세 성의 상인들이 거리를 따라 저마다의 회관과 사당을 세웠다. 그들이 스스로를 위해 지은 것은 핑랑궁이다. 옛 단장강 물길의 뱃사공들이 돈을 모아 세운 곳으로, 잔잔한 물을 빌고 항로의 소식을 나누던 자리다. 종루와 고루에는 ‘순풍’과 ‘순우’를 뜻하는 글자를 쇠로 새겨 걸었다. 성 문화재 당국은 이곳을 남수북조 수원지 핵심 구역에 아직 남은 대형 수운 회관이라고 설명한다. 거리는 2001년 6월 전국중점문물보호단위로 지정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