훙치 CA770은 점토 제안 모형 7개와 공장 전체의 검토, 어려운 작업장 여건에서 만든 실물 크기 모형을 거쳐 모습을 갖췄다. 자옌량과 왕전은 디자인의 서로 다른 단계를 회고했고, 대학에서 발간한 후대 디자인사 연구는 세단 개발 과정과 인도 일정을 더 긴 연대기 안에 놓는다.
격식 있는 3열 세단에는 새로운 설계가 필요했다
화둥사범대학이 2026년 린징징의 디자인사 저서를 검토한 자료는 CA770 개발 프로그램이 1959년 말 시작됐다고 본다. 새 차는 CA72를 단순히 늘린 모델이 아니라 격식 있는 3열 세단으로 대체할 차였다. 자옌량은 나중에 CA72의 외관이 무거워 보였고 승객 배치도 개선할 여지가 있었다고 회고했다. 당시 자동차 공장 책임자였던 왕전은 여러 나라의 세단을 살펴봤으며, 베이징의 좁은 골목에서 회전하기 쉽도록 차체 길이를 6m 미만으로 유지한 것도 그 이유 중 하나였다고 말했다. 요구 조건은 의전 용도와 승객 공간, 기동성을 함께 고려했다.
점토 제안 모형 7개가 윤곽을 눈앞에 드러냈다
자옌량의 회고에 따르면 디자이너 5명과 학생 2명이 1:5 크기의 점토 모형 7개를 준비했다. 그의 안이 선정됐고, 그는 실물 크기의 점토 차체 제작을 이끌었다. 왕전의 회고는 공장 노동자들이 모형을 비교했고 실물 크기 모형은 각 안의 장점을 모았다고 전한다. 어느 한 안이 그대로 선택됐는지를 두고 두 회고의 설명은 다르지만, 두 자료 모두 점토 모형 제작과 공동 검토가 과정의 중심이었다고 설명한다. 모형은 비율을 도면 안에만 머무는 윤곽이 아니라 작업반이 함께 살펴볼 수 있는 눈에 보이는 대상으로 만들었다.
실물 크기 모형은 가동 중인 공장에 들어맞아야 했다
자옌량은 세단 작업장에 공간이 부족해 오프로드 차량 작업장에서 1:1 점토 차체를 만들었다고 회고했다. 왕전은 건물을 비운 뒤 시제품 작업을 공장 여러 곳으로 분산했다고 기억한다. 그의 회고에 따르면 1965년 5월 폭풍으로 세단 작업장이 손상됐다. 작업을 이어가는 동안 기계 수백 대를 약 2주에 걸쳐 7곳으로 옮겼다. 두 회고를 함께 보면 모형 제작에 공간과 도구, 생산 작업장과의 협력이 필요했음을 알 수 있다. 실물 크기 모형으로 사람이 보는 규모에서 비례를 살필 수 있었지만, 이를 만들려면 공장이 실제 작업 공간을 재편해야 했다.
참고 대상이 측정 가능한 디자인 결정으로 이어졌다
자옌량은 명나라 가구의 또렷한 윤곽을 참고하고 볼가의 차체 선을 연구했다고 회고했다. 그는 차체 배치에서 엔진을 낮추고 창문을 키워 비례와 실내의 개방감을 바꾸었다고 말했다. 1:5 모형은 하얼빈항공기제작소 풍동에서 시험했다. 모형에 달아둔 실을 살펴보며 공기가 차체 표면을 따라 흐르는 방식을 확인했다.
더 큰 작업반이 디자인을 생산으로 이어갔다
자옌량의 회고는 주쯔즈가 사업을 조율하고, 양젠중이 엔진을, 화푸린이 차대를 맡았다고 기록한다. 스타일링은 차체 구조와 기계 배치, 공장 공정을 충족해야 했다. 실물 크기 모형 제작은 여러 전문 작업반이 함께 만든 자동차 공정의 한 단계였다. 화둥사범대학 연구 자료는 1965년 말 형식 승인이 이루어졌고, 1966년 4월 21일 첫 차량 20대가 베이징으로 보내졌다고 전한다. 외형을 만드는 과정 이후에도 설계와 승인, 인도는 서로 다른 단계로 이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