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장은 작업장을 키우면서 일할 사람도 길렀다
중국이치의 창립 70주년 역사 자료는 생산 역량뿐 아니라 사람을 길러낸 기관의 모습을 설명한다. 노동자들은 낮에는 공장을 짓고 밤에는 공부했다. 연수생 518명이 9개 조로 나뉘어 소련 스탈린 자동차 공장으로 갔다. 새 창춘 공장은 기존 제조사와 연결되는 한편, 현지의 생산 준비도 계속했다. CA10의 이야기는 완성된 차량 한 대가 갑자기 등장하는 장면이 아니라 조직적인 학습과 복잡한 생산라인을 가동할 인력에서 시작한다.
기술 지원은 트럭 자체보다 넓은 범위에 닿았다
이치 기술센터가 편찬한 기술사는 제품 선정과 공정 계획, 공장 설계, 생산 조직, 장비 공급·설치, 생산량 조정 지원에 이르기까지 소련의 지원 범위를 설명한다. 기준으로 삼은 트럭은 소련의 3MC-150, 4톤 모델이었다. 기사에 따르면 제공된 도면은 해당 차량의 설계를 상당히 충실하게 따랐다. 같은 자료는 소련의 지원에 제품 개발은 포함되지 않았다고 설명한다. 이치는 1954년 설계·시험 부서를 분리했다. CA10이 생산에 들어간 뒤 이 부서가 후속 개선 계획을 맡았다.
출시 전에 생산라인을 조정해야 했다
1956년 7월 인민일보 보도는 소련 전문가들이 도운 생산 조정 단계가 1955년 8월 시작됐다고 전한다. 공정 장비와 공구 1,000종 이상을 조정했고, 자체 제작 부품 1,800종 이상도 점검했으며 대부분 요구 기준을 충족했다고 기록했다. 반복 생산을 시작하기 전에 기계 설정과 현지 제작 부품을 모두 확인해야 했다.
시험 트럭 10대가 조립 라인에서 조정실로 옮겨지다
1956년 7월 14일 신문 보도는 7월 13일 조립한 제팡 트럭 10대의 시험 생산분을 설명한다. 당시 신문은 이 트럭을 제팡 트럭이라고 불렀으며 CA10이라고 명시하지 않았다. 이치의 후대 기술사는 같은 생산 시기의 4톤 모델을 CA10으로 확인한다. 노동자들은 이동식 조립 라인에서 부품을 장착했다. 물과 기름을 넣은 뒤 운전기사가 한 대를 조정실로 몰고 갔다. 엔진 속도가 떨어지는 소리를 설계·공정 엔지니어들이 들었고, 소련 전문가 두 명은 엔진과 부품을 확인했다. 신문은 양산 전 도로 주행과 부품 시험이 더 필요하다고 전한다.
첫 모델 이후에도 창춘에서 개발이 이어졌다
기술사는 설계 부서의 다음 과제가 생산 개선이었다고 기록한다. 신뢰할 수 있는 모델의 장점을 유지하면서 CA10을 중국의 사용 여건에 더 적합하게 만들어야 했다. 수년간 사용하고 조정한 뒤 1960년 10월 첫 파생형 설계가 시작됐다. 소련의 지원을 받은 공장 준비 단계에서 창춘 주도의 제품 개선으로 이어지면서, 첫 트럭이 생산된 뒤에도 설계 부서는 계속 일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