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좡 마을 서쪽, 홍동현 소재지에서 약 2킬로미터 되는 곳에 나무를 둘러 공원이 조성되어 있다. 이야기 속 나무는 광지사 옆에 서 있던 한대의 큰 회화나무로, 그 가지 아래로 남북대로가 지났다. 기록에 따르면 관원은 절에서 떠나는 집들을 차례로 세우고 문서를 내주고 길에 쓸 돈을 주었다. 공원이 간직한 장면이 그것이다. 현 소재지 자체가 큰 회화나무의 이름을 딴 다화이수진에 있어, 지도 위의 이름이 곧 이야기의 이름이다. 이곳은 국가 5A급 관광지이자 산시성 문물보호구역이다.
저널에서
홍동 대괴수와 이주 이야기
나무와 공원, 명대 이주. 옛 기록이 적은 것, 노래가 말하는 것, 그리고 한 현 소재지가 회화나무의 이름을 얻은 일.
같은 도시에서 · 린펀 ↗나무와 마당
기록이 이주에 대해 말하는 것
이주 자체는 기록으로 남아 있다. 《명사》와 《실록》 등 여러 문헌을 바탕으로 한 기록은 홍무 6년인 1373년에서 영락 15년인 1417년 사이에 산시성에서 나간 인구 이동을 18차례로 센다. 홍무 연간이 10차, 영락 연간이 8차로, 50년 안의 일이다. 목적지는 즈리, 허난, 산둥, 남경 일대, 후베이, 산시성(陝西), 간쑤, 랴오닝, 지린, 헤이룽장 등으로 널리 적히고 500여 개 부와 현에 이르렀다고 한다. 홍동현에 대한 영어 기록도 나무를 홍무제와 영락제의 이주 정책과 잇고, 많은 이주민이 이곳 큰 회화나무에 모였다고 적는다.
사람들이 여전히 찾아가는 곳
지금 공원이 간직한 것은 기록보다 의례다. 사람들은 조상에게 말을 남기러 오고, 청명절에는 큰 모임이 열린다. 기록은 한 해 100만 명이 넘는 방문객을 말한다. 노래가 그들과 함께 다닌다. ‘내 고향이 어디냐 묻거든 산시성 홍동, 큰 회화나무라 하게. 조상의 집은 무엇이라 했던가. 회화나무 위 늙은 까마귀 둥지였다네.’ 북방 여러 집안에서 외워 온 이 대구는 문서가 하지 못하는 일을 한다. 수백 년 동안 그 땅을 보지 못한 집안까지 지명을 나른다. 나무와 절과 공원이 그 고정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