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현은 허난의 중서남부에 있고, 현아는 옛 동쪽 거리에 있다. 성의 문화유산 포털은 공사가 홍무 2년인 1369년에 시작되었다고 적고, 이 건물이 전국에 남은 세 곳의 옛 현아 가운데 하나이며 현존하는 옛 관청 건물 가운데 유일한 명나라 시대의 것이라고 밝힌다. 규모는 구체적이다. 1만 6,848제곱미터에 41동 153칸. 대문과 의문, 대전, 이전, 삼전이 중심축을 따라 놓이고 좌우로 부속 건물이 열린다. 지위는 평면에 새겨져 있다. 예현의 지현은 보통의 7품이 아니라 5품을 받았고, 그래서 이곳은 5품 현아로 불린다.
저널에서
5품의 현아
1369년에 세운 예현의 현아는 대문과 대전, 여섯 개의 측실, 그리고 지현에게 백성에 대한 빚을 일러 주던 비석을 그대로 안고 옛 거리에 서 있다.
같은 도시에서 · 핑딩산시 ↗
문은 세 칸, 대전은 다섯 칸
마당 안의 비석
이문 안, 축 위에 경고의 비석이 서 있다. 앞면에는 공정한 다스림을 뜻하는 세 글자가 새겨지고, 뒷면에는 관료의 녹봉이 백성의 기름과 피에서 나오며 하늘은 가혹한 다스림을 견디기 어려워한다는 구절이 새겨졌다. 서예가 황팅젠의 글씨로, 그는 한때 이 현의 현승을 지냈다. 비석을 지나면 대전이 제국의 방식대로 짜여 있다. 동쪽에는 인사와 재정, 의례를 맡은 방이, 서쪽에는 군사와 사법, 공사를 맡은 방이 놓여 중앙의 여섯 부서를 축소해 옮긴 모습이고, 대전 좌우에는 창고와 파발을 맡은 방이 붙는다. 가림막 뒤로는 지현의 거처가 이어지고, 이전과 지현의 처소로 불린 삼전, 뒤편의 작은 정원이 있다.
옛 모습대로 고치기
이 건물이 남은 것은 원칙을 세워 고쳤기 때문이다. 1997년 12월 8일, 옛것을 옛것대로 되살리고 원래의 모습을 지킨다는 원칙 아래 공사가 시작되었다. 몇 해의 세심한 작업 끝에 1999년 9월 29일 주요 전각이 일반에 열렸고, 그로부터 3년 동안 방문객은 9만 명을 넘었다. 현아에는 현이 정리한 발견과 복원의 목록도 붙어 있다. 공자가 이곳을 지나간 흔적, 예공의 행적, 황팅젠의 이야기가 그것이다. 지금은 편종 연주 홀과 전시실을 두었고, 300세트가 넘는 유물 가운데 일흔 점이 넘는 것이 전국에서 유일한 종류라고 포털은 적는다. 현 정부는 이곳을 현아 하나, 거리 하나, 사찰 하나로 짜인 관광 구도의 첫 항목으로 내세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