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널에서

난양 부아, 두 돌판과 공당

부아 대청 바닥에 남은 크기가 다른 두 돌판이 청대 공당이 어떻게 배치되었는지를 보여 준다.

같은 도시에서 · 난양시 ↗

상가에서 공당까지

변화는 몇 걸음 안에 일어난다. 난양 옛 도심의 상업 골목인 민주 거리를 북쪽으로 오르면, 길가에 음식 노점이 늘어서고 상인들의 외침이 따라붙는다. 조금 더 가면 회색 벽돌과 회색 기와의 큰 마당이 나타난다. 앞에는 높은 패루가 서 있고, 현판에는 ‘예남의 첫 고을’이라는 글씨가 걸려 있다. 패루 뒤 첫 번째 문은 소박하다. 세 칸, 회색 기와의 맞배지붕, 양옆으로 벌어진 벽. 이 지역 사람들이 ‘남쪽을 향한 대문’이라고 부르는 모양이다. 두 번째 문인 의문도 얼핏 비슷해 보인다. 그러나 이 문이 배치 전체의 핵심이다. 새로 부임한 지부는 여기서 말에서 내려, 그를 맞이하러 나온 관리의 안내를 받아 들어가야 했다. 조서를 읽거나 큰 제사를 지낼 때만 이 문은 활짝 열렸다. 문 뒤에는 여섯 개의 방, 곧 육방이 대청을 둘러싸고 있었다.

원고석과 피고석

대청은 공렴당이라고도 부른다. 정면 다섯 칸, 깊이 세 칸, 맞배지붕에 둥근 기와, 낮은 기단 위에 올라앉아 있다. 관아에서 가장 크고 가장 높은 등급의 건물이다. 가운데에는 지부의 책상을 둔 난각이 있고, 그 앞 바닥에 돌판 두 장이 박혀 있다. 동쪽이 원고, 서쪽이 피고의 자리이며 피고 쪽 돌이 조금 더 크다. 돌판 옆에는 대청 나름의 문장부호가 놓인다. 지부의 책상, 그리고 정숙과 회피를 알리는 의장이다. 이 배치는 우연이 아니다. 난양시 문물고고연구원의 자푸쥔 총공정사는 재판을 위해 대청 가운데 칸의 앞쪽 기둥을 빼내 내부를 넓혔다고 설명한다. 진·원 시기에 흔했던 감주조 방식이다.

두공, 소박한 기와, 그리고 감사 비석

이 관아에 없는 것은 과시다. 허난성 고건축보호연구원의 보호계획·조사실장 위안린쥔은 관아 건물이 전시가 아니라 실용을 위해 지어졌다고 말한다. 맞배지붕, 회색 벽돌과 기와, 적은 조각. 품급이 정해져 있었고, 수리는 관아가 스스로 돈을 대야 했기 때문이다. 그래도 품급은 처마에서 읽힌다. 부에는 간단한 두공이 허락되었고 현에는 금지되었다. 그래서 난양 부아에는 받침판처럼 작은 두공이 있고, 옆의 현아에는 하나도 없다. 양쪽으로 벌어진 문 옆 벽에는 비석 일곱 기가 박혀 있다. 그중 하나는 강희 연간의 것으로, 서전 등지의 상인들이 상인의 권익을 지켜 준 난양 지부에게 고마움을 전한 기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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