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성범요》에 따르면 이 닭은 명대의 위성에서 시작해 청대에 완성되었다. 이 책이 적는 최초의 조리자는 위성 성 북쪽 월아완촌의 왕명귀이며, 그의 조상들은 모두 닭을 삶아 왔다. 그는 닭의 두 다리를 몸에 엇갈려 넣고 목에 낸 틈으로 날개를 밀어 넣어 날끝이 부리 곁에서 나오게 했으며, 간을 맞춘 닭을 파기라 불렀다. 그가 쓴 향료는 다섯 가지뿐이었다. 정향, 계피 껍질, 산초, 팔각, 훌소리. 그래서 이 닭은 다향 파계로도 불린다. 다른 설은 운하 장사였다고 한다. 바구니를 든 노점들이 부두를 따라 오간 것이고, 가씨족보는 완성된 조리법을 1692년으로 정한다.
저널에서
길 위의 그 닭
더주바지는 급한 사람들을 위해 만들어졌다. 처음에는 운하 부두의 노점이었고, 다음은 철도 상품이 되었으며, 지금은 국가 비물질문화유산 목록에 적힌 기술이다.
같은 도시에서 · 더저우 ↗도시 북쪽의 마을, 그리고 부두 하나
일곱 단계와 그 글자의 뜻
옛법에는 일곱 단계가 있고 이를 옛법의 일곱 가지 묘기라 부른다. 첫째 도축으로, 다 익은 암선을 고른다. 둘째 내장을 뺀다. 셋째 조형으로, 닭을 찬물에 담갔다 빼서 날개를 부리에 물리고 다리를 접어 꼬리를 엇갈려 넣고 눕힌다. 넷째 식물유에 튀긴다. 다섯째 여러 향료로 삶고 스는 것이다. 여섯째 통째로 건져낸다. 일곱째 포장으로, 안쪽은 연잎, 바깥쪽은 푸갈하기로 싼다. 더저우에서 '파'는 도구로 무언가를 벌린다는 말로, 센 불에 먼저 삶고 약한 불로 오래 끓여 살이 물러지게 하며 살과 뼈를 떼어 놓는 일을 함께 가리킨다. 불의 원칙은 단순하다. 센 불은 단단함을 얻고, 약한 불은 부드러움을 얻는다.
철도 음식이 되기까지
20세기에 진포 철도와 석덕 철도가 놓이면서 더주바지는 중국 전역으로 향했다. 더저우는 승객이 많던 주요 철도 교차로였고, 노선은 길었기에 배고픈 승객들이 노점에서 샀다. 이 업종은 1949년 8월에 정리됐고, 1952년 2월에 합작으로 묶였다가 1956년 3월 국영 식품회사에 들어갔다. 1985년에 진공 연포장이 개발되면서 보관 기간이 8개월로 늘어나 장거리 운송 문제가 풀렸고, 상표는 1982년에 등록됐다. 1992년에는 생산 300년째 해가 되어 60명의 국가와 부서 관계자들이 인민대회당에 모였다. 2020년에도 대부분은 더저우에서 먹는 것으로 남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