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난의 거리에서 태산을 보면 한낮 안에 걸어 올라갈 수 있을 만큼 가깝다. 실제로도 그렇다. 등산로는 도심의 해발 약 150미터에서 시작해 847미터에 있는 중천문, 1,460미터에 있는 남천문을 지나 위황정에서 끝난다. 위황정은 해발 1,532.7미터지만 가장 자주 인용되는 숫자는 1,545미터다. 산체 전체는 426제곱킬로미터로 태안 남쪽 기슭에서 시작해 제난 북쪽 가장자리까지 이어진다. 이 산을 특별하게 만드는 것은 바위가 아니라 사람들이 그 바위를 어떻게 썼느냐다. 다섯 성산 가운데 동악이며 해돋이와 갱신에 묶인 산으로, 삼천 년 이상 신앙의 대상이었다.
저널에서
황제들이 걸어 올랐던 산
열두 명의 황제가 태산에서 봉선을 올렸다. 하늘에는 둥근 제단을, 땅에는 사각형 단대를 쌓았다. 그들이 남긴 돌은 아직 바위 위에 남아 있다.
같은 도시에서 · 태안 ↗짧은 등산, 아주 긴 그림자
하늘에는 둥근 제단, 땅에는 사각 단대
이곳에서 거행된 의식을 봉선이라 불렀고, 이는 황제가 할 수 있는 일 가운데 가장 큰 것이었다. 봉의 부분에서는 산의 정수리에 흙을 쌓아 둥근 둔덕을 만들고 천신에게 제물을 드리며, 산에 높이를 더해 공덕을 위로 알린다. 선의 부분에서는 아래 낮은 언덕에 사각형 토대를 쌓아 지신에게 제물을 드리고, 그 대가로 땅에 깊이를 더한다. 하나는 둥글고 하나는 각이다. 하늘은 둥글고 땅은 평하다. 이곳에서 대규모 의식을 처음 올린 군주는 친시황이며, 친 이후 열두 명의 황제가 그 의식을 거행했다. 전통은 태산을 오악의 장이라 부른다. 태산이 있는 동쪽이 모든 것이 다시 시작되는 곳이라 여겨졌기 때문이다.
등산이 남긴 것들
태산에는 1,800을 넘는 석각이 남아 있다. 비석 800여통과 1,000여 개의 절벽 각석이며, 황제와 승려와 문인이 저마다의 사사로 이 산에 올려 남긴 것이다. 공자와 두푸도 올랐고, 등산기를 쓴 야오라이도 올랐다. 불상 각식은 4세기로 거슬러 올라가고 351년에는 승려 랭공이 북쪽 그늘에 령암사를 세웠다. 북제 때 경석욕에 새긴 금강경은 지금도 바위에 남아 있다. 이 산은 측정도 한다. 리관봉에는 1935년 기상학자 주커진이 고른 자리에 세운 중국의 첫 영구 고산기상소가 있으며, 정상에서는 해마다 평균 27.3일 눈이 내린다. 1987년 태산은 10개 기준 가운데 7개를 충족해 유네스코 세계유산이 되었고, 이 기록은 태즈메이니안 황무지와 함께 하는 것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