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펀은 루이팡구의 비탈에 서서 지룽산을 마주 본다. 이름은 아홉 몫이라는 뜻이고, 한 설명에 따르면 아홉 가문이 마을에서 올라온 물자를 나누어 썼다고 한다. 금이 이곳을 바꾸었다. 1890년 타이베이와 지룽을 잇는 철도를 놓던 인부들이 강바닥에서 금가루를 발견했고, 1893년 무렵 광부들은 언덕에서 하루에 몇 킬로그램씩을 씻어냈다. 일본 통치 아래 광산은 규모 있게 정비되었고, 주펀과 이웃 진과스는 대만 금 산업의 중심이 되었다. 마을은 광부와 상인, 찻집으로 가득 찼다. 광석이 줄고 제2차 세계대전 뒤 광산이 닫히자 인구는 줄었지만, 인구는 줄었지만 옛 거리는 지금도 남아 있다.
저널에서
아홉 집의 몫에서 금광 마을로
철도 공사 중에 나온 금이 비탈의 작은 마을을 광산 도시로 바꾸었다. 주펀의 계단과 찻집, 광산 시대의 흔적이 계단과 찻집에 남아 있다.
같은 도시에서 · 신베이 ↗루이팡 위의 붐
계단으로 지은 거리
주펀 옛 거리는 짧은 계단이 언덕의 등고선을 따라 이어지고, 양옆에는 가게가, 위쪽에는 지붕 있는 통로가 놓여 있다. 건물은 좁고 높아 비탈에 바짝 붙어 있으며, 많은 집이 골함석 지붕과 타일 입면을 하고 있다. 비 오는 날에는 돌이 빛나고 해안에서 안개가 올라온다. 골목에는 찻집과 과자 가게, 타로 공과 생선 완자를 파는 노점이 늘어서 있다. 일부 찻집은 옛 광산 사무실을 쓰면서 골짜기를 내려다본다. 유명한 풍경은 위쪽 계단에서 보이는데, 지붕들이 바다를 향해 떨어져 내린다. 이곳은 비가 잦고, 마을의 분위기는 개별 건물보다 날씨의 영향을 더 크게 받는다.
광산 이후의 마을
1989년 허우샤오셴은 주펀에서 《비정성시》를 찍었고, 쇠락해 가던 마을의 골목은 대만 전후사의 이미지가 되었다. 뒤에 온 방문객들은 가파른 골목과 불 켜진 찻집이 애니메이션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의 마을을 닮았다고 여겼지만, 영화 제작진은 주펀을 모델이라고 밝힌 적이 없다. 이 비교가 새로운 종류의 발길을 불러왔다. 지금 주펀에는 약 1,600명이 살고, 그중 많은 사람이 관광업에 종사한다. 금광은 닫혔지만 광산의 풍경은 남아 있다. 갱도와 환기구, 대만 금속광업회사의 폐허가 된 사무실, 광석을 처리하던 계단식 대지가 그것이다. 옛 거리를 벗어나 작은 골목을 걸으면 이 마을을 배경이 아니라 광산 정착지로 읽을 수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