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루는 무엇보다 장소가 아니라 한 종류의 땅이다. 이 이름은 가장 이른 시기에 《수경》과 그 주석에 나타나는데, 그 해안에는 물가마다 갈대가 우거했기 때문이다. 옛 범위는 보하이해안 전체를 따라 북쪽 산해관에서 남쪽 황하입구까지였다. 송 때에는 주치가 창주로 옮겨 갔고, 원 때에는 황제가 그곳에 창루 염운사를 두어 해염 생산을 감독했다. 그때부터 이 이름은 한 처소에 매이지 않고 소금을 얻는 해안을 가리키는 고정된 말이 되었다. 명 때에는 창루진의 염운사가 스물네 개의 염장을 관할했고, 청 때에는 이 일대가 창루 염구로 개편되었다.
저널에서
보하이해안의 염사
소금 덕분에 보하이 서안은 다스릴 이유가 생겼다. 창루는 물가의 갈대에서 온 전체 염해안의 이름이며, 오늘 일하는 염장은 천진 쪽에 있다.
같은 도시에서 · 빈저우 ↗이 이름은 물가의 갈대를 뜻한다
소금이 곧 국고였을 때
몇 세기를 동안 이 해안의 소금은 돈이었다. 중화인민공화국 시대에는 중국 최대의 해염 산지로, 1930년대 초 평균 생산량은 전국의 약 15퍼센트, 염세는 약 11퍼센트로 모두 전국 1위였다. 19세기 말 천진은 창루 소금을 주된 재정 수입으로 삼아 한때 북중국의 경제 중심이었다. 처음 도착한 젊은 프랑스 군인은 이곳이 소금으로 만든 나라처럼 보인다고 감탄했다고 전한다. 산업은 돈을 따라왔다. 1914년 기업가 판수동이 탕구에 정제염 공장을 세워 해왕이라는 상표로 정제염을 팔았고, 1918년에는 한고 염장이 전용 철선을 깔아 확장했다.
빈저우의 염지가 시작되는 곳
오늘 창루라는 이름을 쓰는 염장은 천진 해안에 있고, 현대 염업은 한고, 다고, 탕산의 난보와 창주의 황화에 모여 있다. 한고는 해염 지리표시 이름에도 쓰인다. 황화 이쪽의 해안은 빈저우의 것이다. 해안선은 126.44킬로미터, 염작에 적합한 땅은 96,000 헥타르이며, 암염과 천연 반죽은 확인된 서른두 종 광물 가운데 들어 있다. 이 주는 산둥에서 두 번째로 큰 해염 생산 기지이자, 전국 네 대 어장의 하나가 있는 곳이다. 염장은 유적도 남겼다. 양가 염업 유적지는 다섯 곳의 국가 중점 문물 가운데 하나다. 평평한 땅, 넓은 갯벌, 짧은 우기와 강한 햇빛은 이 해안 전체가 공유하는 조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