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톈진의 ‘러시아 도시’

1920년 이후 수천 명의 백계 러시아 난민이 정착했고, 2000년에는 상업 거리가 문을 열었다.

같은 도시에서 · 허시구 ↗

조계지를 잃은 난민들

샤오바이러우의 모습은 자기 구역을 잃은 사람들에게서 비롯됐다. 1920년대 수천 명의 러시아 난민이 톈진에 도착했다. 러시아 조계지가 이미 폐지된 뒤라 이들은 대신 영국 조계지 남단과 옛 독일 조계지의 인접 거리, 카이펑루 주변과 쉬저우루 서쪽 절반에 정착했다. 외국인 주민들은 이곳을 백계 러시아인 구역, 곧 ‘러시아 도시’라 불렀다. 러시아 망명자들은 양식당과 러시아 식료품점, 술집, 옷가게, 미용실을 열었고 유대인 클럽도 세웠다. 자료는 거리마다 러시아어 간판이 있었다고 전한다.

전쟁의 피해를 비껴간 구역

점령기에도 이 구역이 번성했다는 사실은 다소 낯설게 느껴진다. 샤오바이러우는 조계지 안에 있어 항전기의 피해를 받지 않았고 1937년부터 1945년까지 일본군이 톈진을 점령한 동안에도 장사가 이어졌다. 영국 조계지 기록은 누가 이곳의 손님이었는지 덧붙인다. 샤오바이러우에는 외국인 주둔군을 상대하는 술집과 무도장, 식당이 있는 백계 러시아인 구역이 있었다. 군인의 급여와 난민의 사업으로 살아가는 경제는 안정적이지 않지만, 두 세대 가까이 활기를 띠었다. 거리와 건축에는 그 혼합이 여전히 비친다.

1993년부터의 재개발

현대의 구역은 두 차례 큰 변화를 거쳤다. 1950년대 이후에도 다구베이루와 카이펑루 교차로 주변에는 상점 100곳 가까이가 남아 있었다. 1993년부터 백화점과 호텔을 중심으로 옛 구역이 재개발됐다. 샤오바이러우 상업거리는 2000년 10월 22일 문을 열었다. 재개발을 시작한 지 7년 뒤였다. 2009년에는 역사적 깊이와 금융, 사무 공간, 고급 소매업이 어우러진다는 이유로 톈진의 주요 중심지로 지정됐다. 지하철 1호선은 샤오바이러우·샤와팡·난러우·투청·천탕좡·푸싱먼·화산리·차이징다쉐역을 지나 이 구역을 잇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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