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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독일 조계지

1895년 조계지 설정, 1901년 확장, 1917년 반환. 건물 대부분은 1976년 지진으로 사라졌다.

같은 도시에서 · 허시구 ↗

1895년의 협정

독일 조계지는 협정으로 생겼으며, 그 문서에는 날짜와 서명자 세 명이 적혀 있다. 1895년 10월 30일 성쉬안화이와 리민천, 독일 영사가 톈진의 영구 조계지를 허용하는 협정에 서명했다. 면적은 1,034무였다. 동쪽 하이허에서 서쪽 하이다다오까지, 북쪽 미국 조계지에서 남쪽 샤오류좡 인근까지 뻗었다. 1900년 침공 뒤 독일은 조계지를 확장했고, 1901년 음력 6월 5일 청 정부에 추가 협정을 강요했다. 1902년에는 2,304무에 달해 7년 만에 두 배 넘게 커졌다.

1917년의 반환

이 조계지는 다른 곳보다 일찍 중국의 손으로 돌아왔다. 1917년 8월 14일 중국 정부는 독일 조계지를 인수한다고 발표했고, 톈진 최초의 특별구로 이름을 바꿨다. 중국이 먼저 움직인 결과는 아니었다. 독일이 유럽에서 제1차 세계대전에 패하면서 패전국은 조계지를 계속 보유할 수 없게 됐다. 독일 정부는 뒤이어 베르사유 조약의 관련 조항을 받아들였고 조계지는 정식 반환됐다. 조약으로 얻고 무력으로 넓혔다가 유럽 전쟁의 결과로 잃은 과정은 조계 제도 전체가 작동한 방식을 압축해 보여 준다.

무엇이 남았나

오늘 남은 것은 구역 전체라기보다 거리 한 토막이다. 제팡난루 역사문화거리는 독일풍 건축이 중심 특징인 복합 구역으로 설명되며, 둥광빌딩과 독일클럽, 군벌 우위린의 옛집을 대표 건물로 든다. 목록이 짧은 데에는 지질학적 이유가 있다. 1976년 탕산 지진으로 허시구가 큰 피해를 입었고, 자료는 구 안의 독일 조계 건물 대부분이 사라졌다고 기록한다. 그래서 이곳은 원인이 알려진 파편처럼 남았다. 지하철 6호선은 메이장전람센터와 둥팅루 사이 제팡난루역에 선다. 현대의 거리가 옛 거리 위로 이어지는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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