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이름은 하나의 숫자에서 나왔다. 스바티는 약 400미터의 길로 200여 개의 청석 계단으로 깔려 있으며 위쪽 도시의 자오창커우와 아래쪽 도시 사이를 지난다. 이름에는 두 가지 설명이 있다. 단 아래에서 정확히 18걸음 되는 곳에 단물 우물이 있었다는 설명과 200여 개의 계단이 명청 시대에 18구간으로 나뉘었다는 설명이다. 가장 오래된 계단은 1189년에 놓였다. 그해 남송은 비탈 중턱에 주둔 관청과 병영을 두고 병사들이 훈련할 수 있도록 연무장으로 가는 돌길을 냈다. 그 길이 스바티의 시작이다. 지금도 같은 자리에 같은 방향으로 놓여 있다.
저널에서
두 도시 사이의 이백 계단
아래쪽 도시의 장사와 위쪽의 학교와 병영을 이은 계단, 그리고 다시 지으면서 남긴 것.
같은 도시에서 · 위중구 ↗계단으로 만든 길
한 비탈의 두 도시
1371년의 성벽은 비탈 아래쪽 가장자리를 지났다. 스바티는 난지먼과 진쯔먼, 추치먼 사이에 있었고 그 일대의 능선은 수십 미터를 떨어져 강가 단구로 내려간다. 명청 시대에 아래쪽 도시에는 장사와 관청이 모였고 위쪽 땅에는 학교와 정원, 병영이 있었다. 아래는 장사의 소리로, 위는 글 읽고 훈련하는 소리로 채워졌다. 진쯔먼 아래에는 주둔 관청이 있었고 가까이에 우영 관청과 연무장도 있었다. 성벽 안과 밖은 높이도, 사는 모습도 달랐다. 1891년 항구가 열리면서 인구가 늘었고 이 계단은 도시의 두 반쪽을 잇는 주요한 길이 되었다.
터널과 다시 열림
북쪽 절벽 아래에는 스바티 방공호가 있다. 큰 터널 체계의 일부로 깊이 10미터, 길이 2킬로미터, 높이 2미터이고 출구가 세 개이며 환기도 방화와 방독 시설도 없었다. 1941년 6월 5일 공공 방공호에 피신한 사람들이 압사했다. 2009년 4월 취자거우의 불로 스무 채에서 서른 채의 집이 탔다. 2010년에는 7천여 세대가 이주를 두고 투표했고 시에서 처음 있는 이 투표에서 96.1퍼센트가 이전에 동의했다. 공사는 2017년에 시작되어 2021년 9월 30일에 다시 문을 열었고 계단과 그 옆의 나무는 남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