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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에서 실어 온 벽돌

1913~1916년에 세운 성당. 화북 최대 로마네스크 건물이며 높이 45미터 돔 세 개가 있다.

같은 도시에서 · 허핑구 ↗

왜 자리를 옮겼나

주교가 옛 성당 자리가 너무 비좁다고 판단했기에 새 대성당이 생겼다. 교황청은 왕하이러우성당을 중심으로 연해 대목구를 세웠다. 초대 주교는 옛 도심의 왕하이러우에는 확장할 공간이 없다고 보고, 당시 프랑스 조계지 남서쪽 교회전가, 오늘날 허핑구 시닝루 11호에 새 성당을 준비했다. 1913년 공사를 시작했다. 도심 한복판이 아니라 확장할 땅을 기준으로 자리를 고른 결정이 화북 최대 성당이 역사 중심부가 아니라 지금의 위치에 선 까닭을 설명한다.

시카이성당
시카이성당
시카이성당
시카이성당

벽돌 하나하나

방문객에게 오래 남는 세부는 건축 재료의 이력이다. 건물에 쓰인 벽돌을 모두 프랑스에서 실어 왔다. 바닥 면적 1,891.95제곱미터 규모의 건물이라면 현지에 벽돌 가마가 있는 도시까지 지구 반 바퀴를 돌아 상당한 화물이 온 셈이다. 이 성당은 화북 최대 로마네스크 건축물이며 1,500명을 수용한다. 높이 약 45미터인 거대한 돔 세 개가 품(品)자 형태로 어긋나게 놓였고 목조 틀에 녹색 구리판을 씌웠다. 돔의 녹색은 구리가 산화한 결과다. 가장 알아보기 쉬운 색이 디자인 선택보다 화학 반응에서 비롯됐다.

서로 다른 두 가지 지정

성당에는 성격이 다른 공식 지정 두 가지가 붙었다. 1991년 8월 톈진시 문물보호단위이자 국가급 우수 현대공정으로 선정됐다. 하나는 역사적 가치, 다른 하나는 시공 성과에 대한 판단이다. 건물은 1916년 6월 완공됐고 이때 톈진 교구 주교좌가 왕하이러우에서 옮겨 왔다. 3년에 걸친 이전이 끝난 뒤 옛 성당은 본당으로 남았다. 시카이성당은 옛 프랑스 조계지 빈장다오 남쪽 끝, 취안예창이 동시에 만들어 가던 상업 지구 가장자리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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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출처 및 저작권
  1. 시카이성당Regina800809 / CC BY-SA 3.0 · CC BY-SA 3.0 원본 사진 출처 ↗ 권리 정보 ↗
  2. 시카이성당Sevgonlernassau / CC BY-SA 4.0 · CC BY-SA 4.0 원본 사진 출처 ↗ 권리 정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