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건물은 두 인물이 이끈 상업 사업이었다. 징싱광무국 톈진 판매소를 운영하던 매판 가오싱차오가 자금을 모았고, 융허건축사의 프랑스 건축가 폴 뮐러가 설계했다. 뮐러는 톈진상업대학에서 가르치기도 했다. 백화점은 1928년 12월 12일 프랑스 조계지 총영사로와 푸쉬총사로의 교차로에서 문을 열어 화북 최대이자 가장 완전한 백화점으로 성장했다. 중국 매판의 자본과 프랑스 건축가의 도면이 수십 년간 도시 쇼핑의 중심이 될 건물을 만들어 냈다.
저널에서
장소에 이름을 남긴 백화점
1928년 문을 연 백화점이 옛 비단 거리를 대신하고 교차로 전체의 이름이 됐다.
같은 도시에서 · 허핑구 ↗매판과 건축가
‘프랑스 백화점’이 아니었던 이유
이름을 정하는 과정은 누가 영향력을 가졌는지 보여 주는 짧은 이야기다. 프랑스 조계 당국은 ‘프랑스 백화점’이라 부르자고 제안했지만, 주주 재이진의 조언을 받아 취안예창으로 정했다. 취안예창은 대략 산업을 장려하는 회관이라는 뜻이다. 식민 당국이 아니라 국가 상업 발전의 구상을 담은 이름으로, 조계지의 중국인 투자자들이 단순히 외국 정권의 세입자만은 아니었다는 점을 상기시킨다. 2001년 국가중점문물보호단위로 지정됐다. 20세기 백화점으로는 드문 일이다.
건물이 장소의 이름이 되다
취안예창에서 가장 흥미로운 점은 이름이 확장된 과정이다. 1930년대에는 성곽 밖 옛 비단·의류 거리 구이제를 대신해 도시 상업 중심지가 됐다. 자료에 따르면 빈장루와 허핑루 교차로 주변을 가리키는 장소 이름으로 취안예창이 퍼졌다. 한 가게의 이름이 지역 전체를 가리킬 만큼 압도적으로 성공한 드문 사례다. 이 변화는 1920년대 시작된 상업 중심지의 남쪽 이동을 보여 준다. 조계지 쪽으로 사업체가 옮겨 왔고 거우부리 같은 가게도 함께 따라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