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수와 산을 뼈대로
베이징에서 약 10킬로미터 북서쪽, 하이뎬구에 이화원이 있다. 두 가지 오래된 지형을 빌린다. 쿤밍호는 원 수도의 저수지였다. 만수산은 그 물가에 솟는다. 1750년부터 1764년 청 황제 건륭이 이곳에 정원을 구상하고 청의원이라 이름 붙였다. 집정, 거주, 제사, 기암을 위한 전각과 정이 호수와 산의 한 풍경 안에 있다. 등재 유산은 297헥타르. 페이지 지점은 북위 39°59′49″, 동경 116°16′4.9″. 시 문화국 목록은 명승지를 하이뎬구에 둔다.
무너지고, 같은 자리에서 다시
짧은 설명은 정원이 1750년에 처음 지어졌고, 1860년 전쟁에서 크게 파괴되었으며, 1886년 원래 터 위에서 복구되었다고 한다. 개요는 같은 상처를 다른 말로 전한다. 1850년대 제2차 아편전쟁 중 파괴되었고, 광서 황제가 석태후를 위해 재건하며 이화원이라 이름을 붙였다. 1900년 의화단 운동에서 다시 손상되었고, 한 번 더 복구한 뒤 1924년부터 공원이다. 같은 페이지의 일본어 단락은 1869년을 적는다. 그 해는 여기서 쓰지 않는다. 영어 문장이 상실과 회복의 연대로 쓰인다.
섬 셋, 다리 하나, 여섯 더
쿤밍호에는 큰 섬이 세 개 있어 물 위의 상징적 산으로 정원을 만든다. 남쪽 섬은 십칠공교로 동제와 이어진다. 서제를 따라 여섯 다리가 각기 다른 양식을 쓴다. 만수산 북쪽에는 한식과 티베트식 절이 서고, 정원은 북동의 화취원까지 이어진다. 국무원은 1961년 3월 4일 이화원을 첫 묶음 국가중점문물보호단위에 넣었다. 유네스코는 1998년 기준 (i)(ii)(iii)로 등재했다. 물 위에서도 산 위에서도 머무는 곳이지, 두 번째 자금성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