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진시는 1923년 위먼 츠진바오에서 태어났다. 1950년 조작 시험에 합격해 위먼 유광에 들어갔고, 베이우 5팀의 대장이 됐다. 그의 팀은 1958년 9월 한 달 동안 5,009미터를 시추해 전국 월간 기록을 세웠다. 1960년 팀이 다칭으로 이동하면서 1205팀으로 번호가 바뀌었다.
저널에서
왕진시와 다칭 1205 시추팀의 첫 유정
위먼의 시추공에서 다칭 1205팀의 지휘자가 된 왕진시는 60톤이 넘는 장비를 손으로 옮기고 팀의 첫 유정 작업을 이끌었다.
같은 도시에서 · 다칭 ↗
다칭에 오기 전 시추공
손으로 옮긴 시추 장비
1205팀은 시추 장비를 작업장으로 옮길 인양 장비 없이 현장에 도착했다. 장비 무게는 60톤이 넘었다. 왕진시는 30명이 넘는 노동자와 함께 부품을 손으로 옮기는 작업을 사흘 밤낮 이끌었다. 닷새 뒤 팀은 깊이 1,200미터의 첫 다칭 유정을 완성했다. 성급 문화유산 자료는 사-55를 왕진시의 다칭 첫 유정 자리로 특정하며, 유전 발견정인 쑹지 3호정과는 구별한다.
시추 현장의 기준
두 번째 유정을 시추할 때 얕은 가스층에서 분출이 시작됐다. 왕진시는 진흙 구덩이에 들어가 물에 점토를 섞어 시추 이수의 밀도를 높였다. 또 허용 편차를 불과 0.6도 넘긴 유정을 막는 작업도 팀과 함께 이끌었다. 왕진시는 1970년 47세에 세상을 떠났다. 그의 노동은 위먼에서의 시추에서 다칭 개발 현장의 압박 속으로 이어졌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