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널에서

박람회장에서 공원으로

위안스카이 신구 한가운데 놓인 박람회장. 훗날 지도자가 된 세 인물이 이곳에서 연설했다.

같은 도시에서 · 허베이구 ↗

1902년의 신구

이 공원은 한 총독이 새 도시를 세우기로 하면서 생겨났다. 1902년 당시 직례총독이던 위안스카이는 하이허 북쪽의 낮고 습한 땅에 허베이신구를 조성했다. 중심축은 다징루였고, 규칙적인 도로망과 옛 도심의 성곽을 연결하는 새 개통교 장강교도 놓았다. 장강교는 오래된 부교를 대신했다. 1903년에는 신카이허 철도역, 오늘날의 톈진북역을 세웠다. 의도적인 근대 도시계획이었고 자료는 새 구역이 중국인 거주 지역의 정치·문화 중심지로 발전했다고 설명한다.

한가운데 놓인 공원

위안스카이는 도로망 한가운데 취안예회장이라는 공원을 계획했다. 박람회장이자 공공 공간이었다. 새 구역 중심에 열린 공간을 둔 계획에는 유럽 도시계획의 오랜 전통이 담겼다. 이곳은 여가 공간을 넘어 정치적 역할도 했다. 시민 집회와 청원 장소로 쓰였고 구 자료에 따르면 쑨원과 리다자오, 저우언라이는 각각 여러 차례 연설했다. 청원을 받는 공원은 정원과 다른 종류의 공공 공간이다. 군중이 모여 연설을 듣도록 만들어진 장소였다.

쑨원을 기려 이름을 바꾸다

쑨원이 세상을 떠난 뒤 이곳은 그를 기리는 중산공원으로 이름이 바뀌었고, 그 이름이 정치적 정체성을 굳혔다. 지금은 베이닝공원과 이궁원과 함께 허베이구의 공원으로 소개된다. 구의 공원 목록에는 하이허 중앙광장공원도 있다. 베이닝공원에도 비슷한 기원이 있다. 1906년 저우쉐시는 국립 식물원을 만들었고 이후 공원이 됐다. 이 구에는 경관 설계보다 청 말 근대화 사업에서 출발한 녹지 두 곳이 남아 있다. 지금은 그저 공원이라 불리지만, 많은 정치적 공간은 결국 그렇게 바뀐다.

계속 탐색하기 · 중산공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