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즈구의 역사는 건축보다 행정에서 먼저 시작한다. 원대 조정은 이곳에 영접 관청과 보관 관청, 소금 행정기관을 설치했다. 린칭만호부도 두고 수도로 향하는 곡물을 쌓아둘 창고를 지었다. 같은 시기에 톈페이궁과 톈허우궁도 세웠다. 마을이라기보다 국가 시설을 설명하는 모습이다. 물자를 받는 관청과 보관하는 창고, 소금에 세금을 매기는 기관, 일하는 뱃사람의 안전을 비는 사당이 한 구역 안에 있었다. 운하 국가의 운영 체계가 한 지역에 모였다.
저널에서
성곽보다 먼저 있던 부두
옛 도심 동쪽 강변의 원대 영접 관청과 창고, 톈페이궁.
같은 도시에서 · 허둥구 ↗관청과 곡물 창고
만 척의 배
원대 학자가 합류점의 모습을 가장 잘 전했다. 톈허우궁 제사를 맡아 방문한 장주는 싼차허커우에 아침 햇살이 비칠 때 돛대가 맞닿을 만큼 만 척의 배가 모였다고 썼다. 자료는 이 구절을 물류 규모의 증거로 인용한다. 시는 통계가 아니지만 이미지가 구체적이다. 새벽 강변에서 정박한 배가 빼곡한 물 어귀를 바라본 장면이다. 다즈구는 싼차허커우, 베이다관과 함께 톈진웨이 성곽 밖 강변의 부두·상업 구역을 이뤘다. 일하는 도시는 성벽 안이 아니라 바깥에 있었다.
강 동쪽의 말
이 구역은 언어의 경계도 보여 준다. 자료에서 B형이라 부르는 하이허 동쪽의 옛 톈진 말은 옛 허둥구와 다즈구, 허베이 일대를 아울렀다. 강 서쪽의 옛 성곽 도시와 서부 지역에서 쓰던 A형보다 치경음을 더 많이 썼다. 강의 흐름과 함께 움직이는 방언 경계에 다즈구가 포함됐다는 사실은 이 강변이 성곽 도시와 별도로 발전했음을 상기시킨다. 자체 부두와 사당, 도시 이름을 발음하는 방식이 있었다. 다리가 놓이기 전부터 물이 도시를 갈라놓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