츠수이 죽세공은 서두를 수 없는 재료에서 시작한다. 폭 약 1센티미터의 대나무 조각을 여러 가닥의 가는 살로 나눈다. 국가무형문화유산 기록에 따르면 대나무 준비부터 작품 마무리까지 스무 단계가 넘는다. 살은 고르고, 부러지지 않은 채 교차할 수 있을 만큼 가늘어야 한다. 평면 그림과 입체 작품은 재료를 다르게 사용해 대나무를 표면, 이미지, 생활용품으로 바꾼다.
저널에서
츠수이의 대나무: 가는 살과 강 위의 기술
죽세공 장인의 수련과 독죽표의 역사는 노동과 운송의 변화에 따라 대나무 지식이 달라진 과정을 보여 준다.
같은 도시에서 · 쭌이 ↗
대나무 조각 하나에서 가는 살 여러 개로
반복 연습으로 배우는 기술
양창친은 직업학교로 돌아온 뒤 죽세공을 배우기 시작했다. 2007년 츠수이 장인 천원란에게 사사하며 평면 짜기와 준비 공정부터 익혔다. 무형문화유산 디지털박물관의 보도는 가는 살을 만드는 어려움과 칼을 다루는 법을 익히는 데 필요한 시간을 전한다. 양창친은 뒤이어 입체 작품과 대나무로 엮은 찻주전자 덮개 같은 실용품을 개발했다. 2018년에는 전국인민대표대회 대표 통로에서 츠수이 죽세공을 소개했다.
대나무 한 개에 올라 이동하기
국가무형문화유산 기록은 독죽표의 기원을 츠수이강의 뗏목 노동에서 찾는다. 일꾼은 긴 난죽 한 개 위에 맨발로 서서 짧은 대나무 장대를 노처럼 사용해 방향을 잡고 강가로 떠밀린 대나무를 회수했다. 흐름을 타면서 흩어진 재목을 뗏목으로 되돌려야 했으므로 균형과 속도가 중요했다. 이는 대나무 운송에 연결된 강의 노동이었다. 기록에 따르면 부유물로 쓰인 대나무는 길이 약 8미터, 지름 14~16센티미터였고, 조종용 장대는 길이 약 5미터, 지름 약 4센티미터였다.
운송이 바뀌자 기술도 변했다
육상과 수상 운송이 편리해지면서 대나무 뗏목은 일상 화물 운송에서 사라졌다. 무형문화유산 기록은 독죽표가 노동 기술에서 스포츠와 공연으로 변한 과정을 설명한다. 1999년에 ‘독죽표’라는 이름이 채택됐고, 2011년 전국 소수민족 전통체육대회 종목이 됐다. 이후 개인·2인 연기, 회전, 뒤로 젓기와 대형이 더해졌으며 경주는 속도와 지구력을 겨룬다. 죽세공과 독죽표는 서로 다른 기술이지만 용도에 따라 대나무 지식이 달라진다는 점을 함께 보여 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