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24년 네덜란드 동인도회사는 명의 군대에 펑후에서 밀려나 남서 해안의 모래톱으로 갔다. 그곳은 타요안이라 불렸는데, 인근 원주민 공동체의 이름에서 온 말로, 타이완이라는 단어의 기원 후보 가운데 하나다. 회사는 벽돌과 석재로 제일란디아 성을 쌓고 설탕과 사슴 가죽, 비단 무역의 본부로 삼았다. 성 옆에는 마을이 생겼다. 중국 상인과 일본 무역상이 모였고, 섬을 바타비아와 나가사키에 잇는 시장이 섰다.
저널에서
지도의 끝에 선 성
네덜란드인은 안핑의 모래톱에 본부를 세웠다. 바다가 물러간 자리에는 성곽과 나무집, 음식 거리가 남았다.
같은 도시에서 · 타이난 ↗타요안
포위, 그리고 이름
1661년 명의 유신 장수 정성공이 군대를 이끌고 상륙해 제일란디아 성을 포위했다. 수비대는 아홉 달을 버틴 끝에 1662년 2월 항복했고, 대만에서 네덜란드 시대가 끝났다. 승리한 이들은 취안저우의 다리 이름을 따 이 지구를 안핑이라 불렀고, 성은 이후 정씨 정권과 청이 차례로 사용했다. 지진과 전투가 성을 훼손했고, 항구가 메워지면서 바다는 천천히 물러났다. 오늘날 성은 일부가 재건된 모습이지만, 같은 자리에서 옛 해안이 있던 방향을 내려다볼 수 있다.
나무집과 옛 거리
성 남쪽에는 타이트 상사가 지은 창고가 반얀나무에 잠식되어 있다. 뿌리가 벽돌 벽을 타고 지붕을 뚫었고, 지금은 그늘진 폐허로 안핑 나무집이라 불린다. 안핑 옛 거리까지는 걸어서 금방이다. 좁은 골목에 굴전과 새우말이, 타로케이크를 파는 노점이 늘어서 있다. 가게 뒤로는 상인 가문의 옛집이, 그 너머로는 어항이 있다. 지구는 걸어서 가로지를 만큼 작고, 네덜란드와 정씨, 청, 일본의 층위가 몇백 미터 안에 겹쳐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