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널에서

278칸의 방

1875년에 짓기 시작한 상인 가문의 집. 1923년부터 팔렸고 1992년에 그 마을의 박물관으로 다시 문을 열었다.

같은 도시에서 · 시칭구 ↗

넷째 아들

이 집은 어떤 가문의 어떤 갈래에 속한다. 1827년, 도광 3년에 스셴팅의 아들들은 아버지의 유언에 따라 저마다 당호를 세웠고, 다섯째 아들 스바오헝이 사문의 자리인 쭌메이당을 세웠다. 오늘날 남아 있는 저택은 톈진 팔대가의 하나인 스완청의 넷째 아들 스위안스를 위해 지어졌다. 공사는 1875년에 시작해 1877년에 끝났고, 그 뒤로도 오십 년 가까이 덧붙임과 개조가 이어졌다. 그렇게 해서 도시의 집 한 채가 278칸과 열다섯 개의 이어진 집채를 갖추게 되었고, 집채마다 정채와 곁채가 따로 있었다.

스자다위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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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록이 된 조각

가장 잘 남은 것은 장식이다. 자료들은 벽돌과 목재, 석재 조각을 건물에서 가장 뛰어난 부분으로 꼽고, 전체를 그 시대의 관습을 지닌 청 말과 민국 초의 저택으로 설명한다. 집은 6,080제곱미터의 땅에 2,900제곱미터가 넘게 지어졌고, 열두 개의 닫힌 뜰로 배치되었다. 1992년부터 톈진 양류칭 박물관으로 문을 열어, 이제 건물 자체의 벽돌 조각과 함께 양류칭 세화를 비롯한 민속 예술을 보여 준다. 뜰을 걷는 방문자는 두 가지를 동시에 읽는다. 상인의 부와 이 마을이 팔던 공예다.

팔리고, 다시 열리다

가족은 단계적으로 떠났다. 스위안스는 1900년 톈진 의회와 이사회에 선출되었고 1919년에 죽었으며, 1923년부터 그의 가족이 쭌메이당을 떠나 톈진 도심으로 갔다. 방의 대부분은 1948년까지 하나씩 팔렸다. 1987년 6월 시칭구 정부는 이 당을 구의 보호 대상으로 지정하고 복원비를 대었고, 1992년 양류칭 박물관으로 이름을 얻어 일반에 공개되었다. 지금은 국가 중점 보호 문화재이자 톈진시 보호 문화재, 보호 역사건축이며, 고루와 리춘 사당, 광둥 회관과 함께 이 도시의 중국식 건축을 대표하는 예로 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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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출처 및 저작권
  1. 스자다위안TJArchi-Studio / CC BY-SA 2.0 · CC BY-SA 2.0 원본 사진 출처 ↗ 권리 정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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