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34년 태종 이세민은 아버지 이연을 위한 거처를 짓기 시작했습니다. 이연은 당 왕조를 세운 뒤 퇴위해 태상황이 된 상태였습니다. 처음 영안이라 불린 궁궐은 옛 궁성 북동쪽의 높은 지대에 계획되었습니다. 아버지가 여름 더위를 피할 수 있도록 마련하려는 것이었습니다.
이듬해 이름은 대명궁으로 바뀌었습니다. 『구당서』에 따르면 이연은 635년 대안궁에서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를 위해 계획된 거처는 다음 세대에 더 큰 역할을 맡게 됩니다. 가문의 이름만으로는 시간의 흐름이 가려질 수 있습니다. 창업자 이연, 그의 아들 태종, 손자 이치는 서로 다른 인물이며 궁궐 역사에서도 각기 다른 자리를 차지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