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기의 총지휘부는 완서우궁 옆 장시대호텔이었다. 1923년에 지은 5층 회색 벽돌·목조 건물로, 너비 26미터, 깊이 42미터, 높이 23.5미터이며, 평면은 가운데 안뜰을 둘러 회자 모양으로 접혀 있고 객실은 모두 96개다. 간강을 오가는 여행자를 위한 영업 중인 호텔이었다가 반란이 계획된 장소가 되었다.
저널에서
날짜가 정해진 방
중국 내전을 연 1927년의 봉기는 네 해 전에 지어진 호텔에서 준비되었다.
같은 도시에서 · 난창 ↗96개의 객실을 둔 호텔
왜 8월 1일인가
1927년 8월 1일 중국공산당은 이 건물에서 8·1 봉기를 일으켰고, 그 날짜가 봉기의 이름으로 남았다. 2층 동쪽에는 저우언라이와 린보취의 집무실과 거처가 있었다. 총지휘부, 허룽과 예팅의 지휘부, 주더의 장교 교육단과 주더의 옛 집을 포함한 봉기 본부 유적군은 1961년 제1차 국가중점보호문화재로 지정되었다.
평범한 거리의 한 모퉁이
박물관은 지나치기 쉽고, 그것이 이곳의 성격이다. 이 건물은 도시와 분리된 기념물이 아니라 완서우궁 시장 근처 상점과 아케이드가 이어진 거리의 호텔다. 안뜰은 손님이 드나들던 같은 문으로 들어가야 한다. 그래서 이 자리에 서 볼 만하다. 잠을 자기 위해 지은 방에서, 지금도 장이 서는 거리에서 혁명이 시작되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