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세기 후반 구룡성은 바다와 맞닿아 있었다. 룽춘 석교는 해안에서 구룡성채까지 이어져 구룡만의 배와 성채 사이로 사람과 물자를 옮기는 길이 되었다. 고물고적사무처는 이 다리가 1873년에 건설되어 중요한 수상 접근로였다고 기록한다. ‘용의 물길 다리’라는 이름은 웅장하지만, 실제 역할은 선착장과 해안 너머의 도시를 잇는 것이었다.
저널에서
매립지 아래에서 다시 드러난 룽춘 석교
룽춘 석교는 구룡만 해안과 구룡성채를 연결했으며, 지금은 카이탁 개발 구역의 매립층 아래에서 다시 모습을 드러냈다.
이 지역 · 구룡성구 ↗해안에서 성채로
석교와 정자, 목재 잔교
다리는 한 가지 모습으로 고정되어 있지 않았다. 토사가 쌓여 큰 배가 접근하기 어려워지자 1892년 바다 쪽 끝에 목재 잔교가 더해져 T자형 선착장이 되었다. 다리 끝의 정자는 비를 피하는 곳이자 관리를 맞이하는 공간으로 쓰였다. 석조 길, 목재 선착장, 지붕 있는 쉼터는 항만을 오가는 사람과 화물의 흐름에 대응했다.
매립이 바꾼 해안선
매립으로 땅이 넓어지면서 해안선도 이동했다. 1920년대 다리 일부가 해체되고 정자는 철거되었다. 공항 건설을 위한 1942년의 추가 매립은 남은 다리와 잔교를 땅속에 묻었다. 이는 한 번에 사라진 사건이 아니라 철거와 매립, 만의 용도 변화가 이어진 과정이었다. 2008년 카이탁 개발 사업의 고고학 조사로 다리 일부가 다시 드러났고, 이후 유구는 제자리에 보존되어 새 도시 풍경 안에서 옛 해안길을 읽을 수 있게 되었다.
고고학이 되살린 옛 길
남은 기초는 다리와 잔교, 정자의 자리를 보여주며 바다와 정착지를 오가는 움직임을 어떻게 조직했는지 알려준다. 고고학 발견은 매립이 단순히 땅을 만드는 공사가 아니라 역사를 바꾸는 힘임을 드러낸다. 현재 도시 아래에는 서로 다른 연결을 품은 해안선이 겹쳐 있다. 룽춘 석교의 재등장은 지역 역사의 복원이자 한 세대의 기반 시설이 다음 도시 공사에 가려지는 과정을 보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