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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구와 보와 묘: 양쯔강 기슭의 쑹지

쑹지는 현이 떠난 뒤에도 현치의 건물을 간직했고 지금도 부두로 일한다.

같은 도시에서 · 융촨 ↗

산과 내에서 온 이름

쑹지의 이름은 경내의 쑹쯔산과 지수이에서 왔고 마을은 양쯔강 기슭, 융촨 시가지에서 40킬로미터에 있다. 마을 이름은 안정적이지 않았다. 한때 다른 글자로 쓰였고 2005년에 원래 형태로 돌아왔다. 작은 행정 사무지만 훨씬 긴 역사를 가진 지명의 철자를 정했다. 융촨 자체는 776년 루저우와 비산의 땅을 나누어 현이 되었고 양쯔강 구간은 21.5킬로미터다. 항구구는 쑹지와 주퉈 두 부두를 운영한다. 쑹지와 주퉈, 두 부두가 한 기슭을 나누고 마을 이름은 항구구의 명단에 남아 있다. 이름과 현 경계와 부두, 셋이 이 마을을 붙잡고 있다.

현치의 도구 한 벌

쑹지가 남긴 것은 현치의 도구 한 벌이다. 옛 현아가 있고 남송의 성리학자 천사오난의 부자묘가 있으며 명대에 세운 천궁옌이 있다. 2005년 마을은 중국 역사문화명진 제4진에 들었다. 양쯔강을 앞에 두면 보는 작은 공학이다. 그러나 부두와 마을을 가른 것이 이 보다. 물을 막아 논을 적시고 기슭을 거리를 세울 만큼 안정시켰다. 이 보가 없었다면 여기는 배에서 내리는 곳이었을 것이고 살며 장사하는 곳은 아니었을 것이다. 현아, 묘, 보. 셋은 각각 관과 학과 농에 속하고 셋이 모여야 현성의 모습이 된다. 보는 가장 작고 가장 필요한 물건이다.

강 건너의 월경지

마지막 세부가 강변 마을의 통치 방식을 보여 준다. 1937년 쑹지의 남안 월경지 관시쯔에는 6갑, 51호, 256명, 논 1,130석이 있었다. 융촨이 양쯔강에서 약 이 리, 사방이 모두 장진으로 둘러싸인 한 조각이다. 1937년 7월 융촨현 정부는 장진으로 넘겨 달라고 청했고 성 정부는 9월에 승인했으며 12월 26일 두 현은 인도를 마쳤다. 평범하고 정확한 이야기다. 역사적 우연으로 한 현에 속했던 기슭이 행정 지도의 정리로 옮겨 간다. 월경지는 이 리 사방이어도 갑, 호, 인, 전의 네 장부를 가지고 있었다. 숫자는 그대로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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