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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관과 성문 하나: 안주의 골격

안주의 현 역사는 1662년에 끝났고 관청은 1903년에 닫혔다. 남은 것은 다른 고장 상인이 세운 회관의 거리다.

같은 도시에서 · 퉁량 ↗

세우고 폐하고 다시 세운 현

안주의 역사는 세우고 폐하는 일의 연속이다. 1481년 퉁량과 수이닝의 땅을 나누어 새로 현을 두고 안주천의 이름을 붙였다. 1662년 퉁량과 함께 폐지되어 허저우에 편입되었다. 1721년 옛 안주현과 퉁량현의 땅에 퉁량이 복구되었고 안주는 향으로 남아 교유, 순검, 수비대 같은 현급 관청을 1903년까지 유지했다. 마을 자체는 더 오래되었다. 퉁량에서 가장 오래된 마을로 588년 츠수이현으로 시작했다. 지금은 4A 등급 관광지다. 세우고 폐하고 다시 세우는 일이 사백 년 넘게 이어졌다. 사백 년이 지나도 거리는 그 자리에 있다.

회관을 세운 사람들

건물이 기록이다. 1738년 완서우궁은 장시회관이었고 디주궁은 원래 치안과 황저우의 회관이었으며 마조묘는 1481년 후이파 양식으로 세워져 지금은 후전만 남았다. 1596년 위안톈궁은 정전과 전전을 간직했고 1477년 둥웨묘는 원락 배치로, 1888년 위왕궁은 사합원 배치로 지어졌다. 명대의 샤쯔윈궁은 전전만 남았다. 나머지도 일부만 남은 것이 많고 전체는 충칭시 제2진 시급 문물보호단위로 지정되어 있다. 이름에 상인의 출신지가 들어 있다. 그것이 회관의 가장 직접적인 역할이다. 문을 들어서면 어느 성 사람의 자리인지 알 수 있다.

성문과 다리와 공예

성문과 다리가 이 그림을 마무리한다. 잉펑먼은 명청의 구조로 옛 거리의 성문 가운데 하나다. 후이룽제의 후이룽차오는 아치교로 명대 홍즈 연간에 세워졌다. 사람과 짐이 오가고 수레가 아니던 시절 장시가 놓았을 종류의 다리다. 마을 위로는 보룬사가 당대 초에 세워졌고 그 마애상도 그때 시작되었으며 남은 것은 명대의 것이 많다. 퉁량에는 국가 명록에 오른 공예도 있다. 퉁량룽덩차이자는 제5진 국가급 무형문화유산의 확장 항목이다. 이 마을의 회관과 사당처럼 장인이 하나씩 만든 공공의 물건이다. 문은 드나듦을, 다리는 오감을 지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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