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이허 나루는 철도를 따라 이동하는 사람들과 남쪽 강변의 활동을 이어 주었다. 구 정부는 벙부를 ‘기차가 끌어올린 도시’라고 부르며 철도교가 도시 형성의 촉매가 됐다고 설명한다. 이 표현이 기존 주민과 정착지를 지워서는 안 된다. 새로운 기반 시설이 교류의 규모와 방향을 바꾸었다는 뜻이다.
저널에서
벙부: 철도교가 나루터를 도시로 바꾸다
1911년 진푸 철도교는 화이허 정착지의 성장과 토목 사업을 연결했다. 여러 차례 보수된 흔적은 중요한 도하 지점의 변천을 보여 준다.
같은 도시에서 · 벙부(蚌埠) ↗도시가 생기기 전
화이허를 가로지른 아홉 경간
공사는 1909년 11월 시작됐다. 주교량은 고정 트러스 구조로 교각 8개와 경간 9개를 갖췄고, 접속 교량을 제외한 길이는 약 553미터였다. 시공자들은 까다로운 하천 조건에 맞서 공기 케이슨으로 교각을 세웠다. 넓고 수위가 달라지는 물길 위로 단선 철로를 따라 열차가 지나는 모습을 떠올리면 숫자가 다리의 규모를 실감하게 한다.
전쟁 속의 다리
1938년 2월, 일본군의 진격을 늦추려고 철도교가 의도적으로 파괴됐다. 구 자료는 교각과 경간의 손상, 점령기 보수를 기록한다. 철도망을 이어 주던 다리는 군사적 표적이 되었고, 재건도 군의 통제 아래 이뤄졌다. 이 다리의 역사는 전쟁 속 기반 시설의 취약성을 드러낸다.
오늘의 도하 시설
훗날 화이허를 가로지른 고속철도교도 같은 넓은 물길 위에 있지만, 옛 다리와는 구조도 이야기도 다르다. 옛 트러스교와 현대 교통 시설을 함께 보면 속도와 수요가 달라질 때마다 도하 방식이 다시 만들어졌음을 알 수 있다. 1911년 다리는 벙부의 철도 도시 정체성을 키웠고, 오늘의 교량은 변함없이 흐르는 강과 달라지는 교통을 함께 보여 준다.